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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속에 누웠을 때 본문

♣..Catholic

관속에 누웠을 때

Janny (ㅈr 니ㅅrㄹ6 ) 2015. 9. 20. 22:22

관속에 누웠을 때

                                 백성호의 현문우답 賢問愚答

 

 

 

 

관(棺) 속에 들어가 본 적 있으세요?

죽어서 들어가는 관 말입니다.

저는 관 안에 누워본적이 있습니다.

~*죽음 체험 하루 피정*~ 이었습니다.

 

취재차 갔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섰더군요.

관속에 들어가려고 말입니다.

묘했습니다.

관에 들어 갔다가 나오는 사람마다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곁에 있던 그리스도상 아래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추더군요.

들어갈 때 와 나올 때, 확실히 다르더군요.

보고만 있자니 너무 궁금했습니다.

저도 줄을 섰습니다.

 

제 차례가 왔습니다

신부님이 관 뚜껑을 열었습니다.

계단을 밟고 제단위에 올랐습니다.

관 속으로 한발을 넣었습니다.

또 한발을 넣었죠.

그리고 위를 보고 누웠습니다.

뒤통수가 바닥에 닿았습니다.

잠시 후 관 뚜껑이 스르르 닫히더군요.

틈새로 빛이 조금 들어왔습니다.

그 위로 천이 덮였습니다.

관 속은 이제 완전히 캄캄해졌습니다.

눈을 떠도 어둠. 눈을 감아도 어둠. 이런게 무덤이구나 싶더군요.

바깥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직장도 있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내가 아끼는 모든 물건이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때 실감이 났습니다.

뒤통수를 쾅~! 치더군요.

“아~ 이런 거구나.

죽는다는 게.

바깥세상의 어떤 것도 이 안으로 가지고 들어 올수는 없구나.“

관 속에 누운 저를 다시 봤습니다.

몸뚱이만 있더군요.

“숨을 거두었으니 이 몸도 곧 썩겠구나!

그럼 무었이 남나.

”아~ 그렇구나.! 마음만 남는구나. 그게 영혼이겠구나.“

 

한참 지났습니다. 관 뚜껑이 열렸죠.

눈이 부시더군요.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주 짧은 체험이었죠.

그래도 여운은 길더군요.

“잘 살아야겠구나.

그래야 죽어서도 잘 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으니 까요.

어쩌면 삶의 열쇠가 죽음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죽음은 우리가 틀어쥐고 있는 모든 걸 놓아 버리게 하는 거대한 포맷의 자리니까요.

                                                                                                                  

그러니 죽음의 문턱까지 갔거나.                                   

명상이나 묵상을 통해 죽음을 깊이 사색한 이들은 포맷한 자리를 체험합니다.

예수에게는 그게 십자가 였고 ,

붓다에게는 보리수 아래 무아(無我)의 자리였겠죠.

                                 무아=자기의 존재를 잊는것

사람들은 묻습니다.

그런 관이 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우리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

남을 용서하려면 먼저 “옳다고 여기는 나의 고집”이 무너져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가 됩니다.

나의 고집이 무너질 때 내가 한 번 죽는 겁니다.

그게 진짜 관입니다.

들어갈 때는 힘들어도 나올 때는 홀가분합니다.

덤으로 사는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카톡좋은글이 웹 검색하여 포스팅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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